“한없이 약하고 순수한 아이들을 아껴주세요”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터져 나온 그녀를 한참동안 달래야 했다. 가슴 속 깊이 묻어 놓았던 펫로스의 아픔을 억지로 꺼내게 만들었구나 하는 생각에 미안했고, 그래도 대화를 이어나가야 하는 이 상황이 스스로도 참 못돼보였다.
2013년까지 전주 MBC에서 활동했던 주혜경 아나운서는 현재 경기방송에서 굿모닝 코리아를 진행하고 있다. 173cm의 늘씬한 키와 단정한 외모 그리고 스피커를 통해 듣고 있나 착각할 만큼 차분하게 울리는 목소리는 ‘아! 아나운서’라는 감탄사를 내뱉게 한다.
“방송 외에 스피치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미인대회나 선거철을 앞두고 대중 앞에 서야하는 분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스피치의 가장 중요한 점은 사람들의 눈을 보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차분하고 단아한 몸가짐 때문일까 유독 그녀는 정부 공식 행사를 많이 진행했다. 아나운서의 매력이 무엇인지 묻자 희망을 줄 수 있어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제가 처음 아나운서에 대한 꿈을 갖게 된 것이 ‘사랑의 리퀘스트’라는 프로그램 때문이었어요. 아나운서가 이끄는 프로그램으로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것을 보고 저도 미래의 희망을 품은 거죠”

그래서일까, 그녀가 진행했던 많은 행사 중에서 가장 애착을 갖고 또 기억에 남는 것은 ‘탈북자를 위한 토크 콘서트’라고 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 가족들이 남아있는 상태라 신원이 밝혀졌을 때 북의 가족들이 많은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분들이 마이크를 잡고 나서는 것은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 바로잡고 싶어서죠. 지금도 북한은 굶어 죽는 사람이 부지기수라고 해요. 토크콘서트를 통해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합니다”
탈북자협회가 주최하는 콘서트는 후원이 들어올 때마다 비정기적으로 열리는 행사라서 감독도 작가도 없다. 때문에 그녀가 직접 출연자들을 미리 만나 대본을 쓰고 기획까지 하고 있다. 힘든 일을 마다 않는 이유는 탈북자들에게 대중의 ‘관심’이 필요해서다.
“돈은 다른 행사에서 벌면 돼요. 전 어려운 단체를 먼저 돕고 싶어요”


이토록 따스한 심성의 그녀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반려견 두 마리가 있었다. 몽이와 둥이. 합쳐서 몽둥이라면서 웃음 짓지만 얘기를 이어가기 힘들만큼 그녀의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몽이는 13살이 되던 지난 해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런 몽이와 처음 만난 이야기를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게 들려주는 그녀. 듣는 이의 마음이 더 아파왔다.
“13년 전 말티즈 한 마리를 인터넷으로 샀어요. 그 때는 사실 강아지 입양에 대해 잘 몰랐던 시절이었어요. 데려온 강아지는 사흘 만에 장염으로 죽었고 전 구입한 곳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은 ‘강아지공장’이었어요.”
“다른 개로 주겠다면서 가게 주인이 바구니를 들고 왔고 거기에는 세 마리 말티즈와 말티즈 같지 않은 믹스견 강아지 한 마리가 있었어요. 가게 주인이 믹스견은 상품가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럼 이 아이는 어떻게 되냐고 물었더니 안 팔리면 어쩔 수 없지 라면서 죽일 것처럼 얘기했어요.”

결국 그녀가 데려온 건 바로 그 믹스견, 한 살 난 몽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데려오는 전철 안에서 자신을 똘망똘망 바라보는 몽이의 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네가 어디가 아프거나 불편해져도, 많이 못생겨져도, 또 말썽을 부려도 언니랑 평생 살 거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서 더욱 교감이 남달랐던 몽이는 말썽을 부리다가도 그녀의 말이라면 잘 들었다. 강아지털 알레르기 때문에 따로 자다가 아침에 방문을 열어보면 문 앞에서 언니 일어났냐며 손을 흔들고 있던 몽이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몽이를 보내던 날의 기억도 아프지만 또렷하다. 몽이는 자궁축농증이었다. 여자아이니까 자기 새끼도 낳아서 키워봐야지 하는 마음에 중성화를 시키지 않은 터였다.
“며칠 전부터 기운이 없더니 죽던 날 아침 제 침대로 올라와 자신이 아픈 것을 말하려는지 얼굴을 비볐댔어요. 침대 위로 뛰어 올라올 기력이 없던 아이라서 놀랐고 또 저를 바라보는 얼굴이 평소와 너무 달라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어 빨리 병원에 갔어요”

수술하면 된다는 수의사 말에 안심하고 다음 날로 수술일정을 잡은 그녀는 몽이와 인사를 한 후 예정된 행사를 하러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 인사가 돼버렸다. 그녀가 행사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 몽이는 이미 유골함에 들어 있었던 것이다.
병원 측 설명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지만 이미 몽이는 떠나버렸고 그냥 보낼 수는 없어 하룻밤 유골함을 안고 잤다. 그렇게 일 년의 시간이 지났고 여전히 몽이의 이야기는 꺼내기 힘든 아픈 기억이라 가족들도 되도록 몽이에 대한 말을 아끼고 있다.
그녀의 눈물을 멈추게 한 건 인터뷰를 위해 함께 나선 발랄한 푸들 둥이. 이제 세 살. 선배가 키우던 개가 새끼를 낳아 데려왔는데 엄청난 애교장이라서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몽이가 가고 난 후 실수로 둥이를 몽이라고 잘못 부르면 평소 몽이가 앉아있던 방석을 멍하니 쳐다봐요. 공놀이 할 때도 늘 몽이가 느려서 둥이 뒤로 쳐져있었기 때문에 요즘에도 뒤를 쳐다보곤 하더라고요”
둥이도 그녀처럼 몽이의 빈자리가 아직 낯선 것 같았다. 하지만 처음 키우느라 몽이에게 서툴렀던 부분들을 지금 둥이에게는 두 번째라서 그런지 조금 더 잘해내고 있다.

“애견인들이 좀 더 공부하고 노력해서 아이들의 언어를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해요. 그래서 아이의 상태를 보고 어디가 아픈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말이죠. 시간이 참 짧더라고요. 그리고 해주지 못한 것들을 꼭 보낸 후에 후회하게 되니까요”
한없이 순수하고 약한 존재인 개들이 똑같은 생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잘 아껴달라고 당부하는 그녀.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다.
“더 많은 무대에 서고 싶어요. 아나운서로서 생활도 좀 더 하고 싶고, 지금은 라디오로 인사드리고 있지만 곧 티비에서 뵙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어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보단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좋은 생각을 전하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요.”
물론 둥이와의 계획도 빼놓지 않았다.
“둥이가 멀미가 심해 멀리는 여행을 못가요. 그래서 가까운 안면도로 조개를 잡으러 가려고요. 강아지 펜션도 있고 둥이가 갯벌에서 뛰어노는 걸 참 좋아하거든요. 무지개다리를 건너기 전까지 아낌없이 사랑해줄 거예요”